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 부장은 지하철 안에서 출가한 겸덕에게 문자를 보낸다.
“산사는 평화로운가? 난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 …”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는 “조용한 곳에서 맘 편히 살고 싶다.” 라는 말이다. 세상과 다소 떨어진 곳,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산사에서는 과연 맘 편히 지낼 수 있을까?
겸덕은 말한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산사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내가 있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인가? 죽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Freud에 의하면 죽음이란 긴장이 없는 애초의 상태를 의미하며, 인간에게는 이러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죽음본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죽음에 의한 ‘마음의 평화’는 원하든 원치 않든, 때가 되면 찾아온다. 그때 평안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사는 동안은 열심히 부딪치면서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가는 부담을 덜 수 있을까?
겸덕은 말한다.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은 게 하나도 없다”라고도 말한다. 무겁게 느끼는 것은 그저 마음의 조화라는 것이다. 백이십 근의 무게에 천근 혹은 만근의 무게감을 더하는 것도 주변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이 될 수 있고 무거운 것도 얼마든지 가볍게 느낄 수 있다. 결국, 내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느껴지면 일단 우리를 속박하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럴진대 우리는 지금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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