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무력감, 슬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것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혼자 항변하고 스스로 달래 보아도 소용없던 말이지만, 다른 이에게서 들으면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드라마 '홍천기'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자신을 탓하지 마시오", '갯마을차차차'에서는 "세상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고 그건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라고 들려줍니다.

죄책감이란 사회적 규범이나 개인의 원칙 혹은 신념 등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하여 느끼는 책임감을 말합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한 후에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행동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느끼기도 합니다.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 하고 잘못이라는 것은 인지하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소시오패스라 부르기도 합니다.
죄책감은 어려서부터 배우게 됩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처벌'이 따르고 잘한 행동에 '칭찬'이 따르는 일관적인 환경 속에 있었다면 바른 행동과 잘못된 행동을 구분하기 적절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벌과 함께 어째서 잘못된 것인지를 인지하게 되면 당연히 그러한 원칙이 내재화하면서 행동 원칙으로 작용하고 '양심'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내가 잘하면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라는 생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반면에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네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없었으니 책임이 없다는 의미며 동시에 다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무력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죄책감과 무력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무력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성급히 책임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합니다.
섣부른 면책은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죄책감을 호소하는 사람 스스로 면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한 커플이 여행을 떠났는데 식당칸에 불이 나서 한 사람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제가 커피를 사달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제가 사러 갔었어도….”라고 매번 흐느낍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잖아요”라고 얘기해 주어도 더 심하게 죄책감을 호소한다면 “왜 당신이 사러 가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사고 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당신만 모를 수 있었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사자가 “그걸 알 수는 없잖아요”라고 항변한다면 그때 “그런데 자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것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슬픔을 죄책감으로 덮으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