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화장실에서 약물 과다로 인한 사망사고가 종종 발생합니다.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겠지만, 의도치 않은 사고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사고라면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러 설명 중 하나는 '조건화된 금단증상'일 것입니다. 금단증상은 중독과 연관이 있는데 사실 중독보다는 의존이 더 정확한 개념입니다. 중독(intoxication)은 식중독과 같이 독성이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의존(dependency)은 의존하는 물질 없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므로 금단증상은 의존이라는 개념과 더 잘 어울립니다. 중독을 대체하는 의존이라는 말이 아직은 생소할 수도 있으니 여기서는 일단 중독이라고 하겠습니다. 중독의 특징은 통제력 상실, 금단증상, 내성이라 말합니다.
통제력 상실은 중독된 물질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 것을 말합니다. 술을 예로 든다면 딱 한 잔만 마시려고 했지만, 통제하지 못하고 취할 때까지 마시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금단증상은 일정 수준의 알코올이 체내에 유지되지 않으면 떨림, 불안, 통증 등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는 증상을 금단증상이라고 합니다. 내성은 평소와 같은 수준의 음주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음주량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내성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화장실에서 일어난 약물 과다로 인한 사망사고를 조건화된 금단증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한가지 전제해야 할 것이 있는데 사망자가 보통은 화장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약물을 주입해왔다는 것입니다. 공원에서 약물 투여를 해오다가 사고가 난 날에는 예외적으로 화장실에서 약물을 투여했다면 사고 정황이 더 확실해집니다.
사망자가 평소처럼 공원에서 약물을 투여했다면 약물의 효과에 대한 기대로 신체에서 약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일어났을 것이고 그 결과로 금단증상을 좀 더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별로 시장기를 느끼지 않다가 식당을 보고 강하게 시장기를 느끼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조건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신체에서 일어난 조건화된 준비 반응은 거듭할수록 강해지므로 조금씩 더 많은 양의 약물을 주입하게 되는 것이고 내성이 생기는 것이죠. 누군가 나의 배를 가격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을 때 받는 충격과예상하지 못하다가 가격당했을 때의 충격이 다른 것과 다소 유사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상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약한 충격에도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죠.
평소와 달리 공원이 아닌 화장실에서 약물을 투여하게 되었을 때 신체적으로 약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과 약물 사이에 조건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을 주입하면 평소의 용량도 치사량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에서는 약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의존자들이 좀 더 위생적으로 일정한 장소에서 약물을 투여하도록 조처하면서 약물의존을 치료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물론 30~40년전 얘기이니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건화된 금단현상과 내성 때문에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중독문제가 있는 분들에게 술과 연관이 있는 장소를 멀리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술과 연관이 있는 장소는 금단증상을 증폭하여 통제력 상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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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화 과정은 파블로프가 실험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래는 조건화 실험이 아니라 침샘분비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개에게 먹이를 주려고 불을 켜면 개가 이미 침샘을 분비하여 제대로 측정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결국 조건화 현상은 실험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는 것이죠. 방해요인을 포착하여 실험한 결과가 조건화 실험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 우링게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수 있습니다.
종소리를 들려주면 개는 처음에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먹이를 주면 개는 침을 흘리면서 좋아합니다.
종소리와 함께 먹이를 몇 번 준 다음에는 종소리만 들려 주어도 개가 침을 흘리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고전적 조건화라고 합니다. 조건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전적 조건화란 원래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던 대상 (중립자극 혹은 NS라고 하며 여기서는 '종소리', )이 본래부터 특정의 정서반응 (무조건 반응 혹은 UCR이라하며 여기서는 '침흘림')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대상 (무조건 자극 혹은 UCS라고 하며 여기서는 '먹이')과 함께 시공간적으로 인접하여 자주 발생하면 원래 특정 정서반응을 일으키지 않던 대상이 특정 정서반응 (조건반응 혹은 CR이라 하며 여기서는 종소리를 듣고 흘리는 '침흘림')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1. 종소리 (NS) ------------------------> 단순 호기심 (금세 사라집니다.)
2. 종소리 (NS) + 먹이 (UCS) -------> 침흘림 (UCR) (먹이로 인해 침을 흘립니다.)
3. 종소리 (CS) -------------------------> 침흘림 (CR) (종소리가 신호 역할을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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