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은 자주 함께 나타나는 증상들에 해당하는 하나의 합의된 명칭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단을 내린 후에는 장애 증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들을 찾아야 하는데 이 과정을 학술적으로는 '사례 개념화'라 하며 이미 상당 부분이 진단을 내리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진행됩니다.
사례 개념화 과정에서는 검증된 이론에 맞추어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되어야 합니다. 내담자가 수긍할 수 없는 설명이나 사례 개념화라면 내담자의 변화 동기가 형성되기 어려워 상담 및 치료과정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사례 개념화 과정에서는 증상을 중심에 두고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앞뒤의 요인들을 살펴보게 됩니다. 증상 발현의 가능성을 높이는 취약요인, 증상을 촉발하는 유발요인, 증상이 지속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 3가지 요인이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장애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애 증상을 설명하는 이론에 따라 3가지 요인 외에 당연히 더 많은 요인을 살펴볼 수 있고 3가지 요인도 이론에 따라 비중에 차이가 있습니다. 취약요인에는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 신체적 취약성, 자존감 저하, 역기능적 핵심신념 등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요인들이 포함되고 유발요인에는 조건 자극, 혹은 자동적 사고가, 유지요인에는 증상에 의한 긍정적인 결과가 포함될 수 있는데 정신분석의 경우에는 취약요인에, 행동주의 이론에서는 유지요인에, 인지치료적 이론에서는 유발요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애 증상을 설명하는 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발표되었지만, 핵심이 되는 이론으로 생물학적(의학적), 정신분석적, 인본주의적, 행동주의적, 인지치료적 이론, 시스템적 이론(systemic theory)을 들 수 있습니다. ‘제3의 물결’이라는 등 요란한 말로 수식된 ‘새로운’ 이론들도 많이 발표되었지만, 살펴보면 대부분 위에 언급한 이론에서 파생된 것들입니다.
각 이론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생물학적 이론에서는 장애 증상의 원인을 중추신경계의 이상 기능에서 찾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세로토닌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보며 신체적 원인을 바로잡기 위해 약물치료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장애 증상의 원인을 극복하지 못한 무의식의 갈등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무의식에 내재하는 갈등에서 기인하는 공격적 에너지가 해소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결과로 생각합니다. 치료는 당연히 무의식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인본주의적 이론에서는 주변에서 요구하는 이상적 자기와 자신이 원하는 현실적 자기가 일치하지 않을 때 소외감을 느끼면서 정신장애 증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기대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간의 차이를 해소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무력감이 우울증의 원인이고 증상일 수 있는데 이러한 맥락을 인식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4) 행동주의 이론에서는 장애 증상 역시 다른 행동과 마찬가지로 조건화와 강화의 원리에 의해 학습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조건화와 강화의 학습 원리에 의해 바람직한 행동을 습득하게 된다면 증상은 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특징 중 하나는 기대하는 바가 없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활동량 감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즐거움도 동시에 사라지므로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죠. 치료의 핵심은 무언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늘려가는 것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5) 인지치료적 이론에서는 특정 사건이 증상을 직접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증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실직이나 이혼과 같은 사건 자체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직이나 이혼과 같은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직이나 이혼을 인생의 실패로 본다면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큰 반면에 새 출발의 계기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증상도 사라진다는 것이 인지치료의 핵심입니다.
6) 시스템적 이론에서는 개인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시스템의 문제로 봅니다. 대표적인 시스템은 부부관계나 가정이며 시스템에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힘이 작용하는데 시스템이 와해될 위기가 발생하면 시스템에 속한 누군가의 증상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시스템의 와해가 보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와해를 저지하던 증상이 사라지면 시스템이 와해할 수 있으므로 증상 해소에 대한 시스템의 저항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스템 와해의 원인을 찾는 것이 증상 해소에 우선할 가능성이 큽니다.
장애 증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치료나 상담과정은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습니다. 매슬로(Maslow)가 언급한 바와 같이 망치 하나만 들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때려 박으려 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다양한 '연장'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호하는 이론이 있다 하더라도 다양한 이론을 숙지하여 더 적절한 심리케어를 제공하는 것은 상담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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