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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이야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justhong 2021. 10. 19. 13:38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도한 후에 겪는 심리적 증상이 학술지에 보고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2년도에 발간된 DSM 초판에 ‘gross stress reaction’이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가 1968년도에 발간된 DSM-II에서는 다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DSM-III에 ‘외상 후 스트레스반응’ 혹은 DSM-III-R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명이 등재되면서부터 트라우마(외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트라우마’를 전제로 하는데 트라우마란 외상적 사건 즉,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상적 사건으로는 교통사고, 강력 범죄, 성폭행, 자연재해 등이 언급되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더라도 직장 스트레스와 같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들도 일정 기간 지속되면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즉, 사건의 객관적 경중보다는 주관적인 상처의 정도가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적 사건의 재경험, 외상적 사건을 연상시키는 자극과 상황 회피, 인지 및 정서의 부정적인 변화, 과각성 등의 특징을 보이는데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A.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 심각한 상해, 성폭행 또는 신체적 안녕을 위협하는 혐오적인 사건이나 상황(외상적 사건)에 반복적 혹은 극단적으로 노출된 경험이 있다.
B 외상적 사건을 다음 중 1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재경험한다.
1) 사건에 대한 반복적이고 침습적인 괴로운 회상 (소아: 사건과 연관이 있는 놀이)
2) 사건에 대한 반복적인 악몽 (소아: 내용과 상관없이 악몽)
3) 외상적 사건이 재현되는 Flashback 경험
4) 외상적 사건과 연관된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심각한 심리적 고통
5) 외상적 사건과 연관된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생리적 반응
C. 외상적 사건과 연관이 있는 1가지 이상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회피한다.
1) 외상과 관련된 생각, 느낌, 대화를 회피
2) 외상이 회상되는 행동, 장소 등 외부적 요소를 회피
D. 인지의 부정적인 변화를 두 가지 이상 경험한다.
1) 외상적 사건에 대한 망각
2)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 주변 환경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해지는 불신
3) 외상적 사건의 원인 또는 결과와 관련하여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비난하게 만드는 왜곡된 인지
4) 지속되는 부정적인 정서
5) 흥미감소
6) 타인에 대한 무관심
7)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못함
E. 심해진 각성 반응이 2가지 이상
1) 과민한 상태 또는 분노의 폭발
2) 난폭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행동
3) 지나친 경계
4) 놀람 반응
5) 집중의 어려움
6) 수면장애
F. 진단 기준 B~E의 기간이 1개월 이상이다.
G. 증상이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다른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장해를 초래한다.
H. 스트레스 증상이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증상 기간이 3개월 이하면 ‘급성’, 3개월 이상이면 만성, 스트레스 발생 후 적어도 6개월 이후 증상이 나타나면 지연성이라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련 이론

 

트라우마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형성된 ‘나는 이런저런 사람이다’라는 자아개념 혹은 자아상에 수용될 수 없는 극히 부정적인 경험을 말합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매몰’되면 그동안 형성된 개인의 자아상을 통째로 상실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 사람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에 사람이 완전히 변해버렸어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박하사탕’이라는 영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경찰이 된 김영호(설경구)에게 애인이었던 윤순임(문소리)이 찾아와 말합니다.

“영호씨 고향의 식구들이 영호씨가 왜 경찰이 되었는지 모르겠대요” … “아까부터 영호씨가 아니라 딴 사람 같았는데 손 보니까 영호씨 맞네요. 참 착하게 보이는 손. 나 맨 처음 영호씨 만났을 때 이런 손 가진 사람이니까 마음이 참 착하겠다.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영호는 왜 고문 경찰이 되었을까? 단언할 수 없겠지만, 영화에서는 광주에서 경험한 사건이 트라우마가 된 것으로 묘사됩니다. 실수건 고의건 영호는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악한 행동’을 하고 나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악한 모습’에 부합하는 행동을 지속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악한 행동을 통해 그동안의 착하다는 자아상과 악하다는 트라우마 사이의 견디기 힘든 갈등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착함과 악함 사이에서 갈등하기보다는 악행을 택한 것이고 악행을 하면 할수록 그동안의 착하다는 정체성은 점점 더 파괴되어 가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설명은 사실 정신분석에 더 가까운 얘기입니다. 인지행동 치료적 관점에서는 공황발작과 유사하게 악순환의 반복을 통한 단계적 확대(escalation)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재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서적 처리 과정이므로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인데 처리가 적절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련 인지 도식이 온전히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므로 피하려 하므로 인지 도식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그 결과 인지 재구조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트라우마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트라우마 재경험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파국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파국적 사고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피 행동을 하게 되는데 도피 행동으로 인해 트라우마와 연관된 파국적 사고가 온전히 활성화되지 않아 인지 재구조화 혹은 습관화(habituation)가 일어나지 못하고 그 결과 파국적 사고가 유지 강화되면서 다시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다시 경험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긴장 수준이 높아 긴장이완 훈련을 통해 전반적인 긴장 수준을 낮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회피행동이 문제가 되므로 직면을 통한 치료가 바람직합니다. 직면은 개인적인 트라우마 자체에 대한 직면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자극에 대한 직면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트라우마가 일어날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직면 치료는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직면보다는 심상적 접근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내담자가 심적으로 준비되었을 때 시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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