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관심을 끌어 유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반드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기술하는 ‘혈액형 성격’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요즘에는 혈액형 성격에 관한 얘기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듯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것은 수명이 길지 않고 유행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자기의 경험에 기초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험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논리적이고 듣는 사람에게 해가 될 것이 없다는 점에서 무방하리라 생각되지만, 객관적인 검증 없이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의한 것을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에 대응되는 개념은 미신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미신적이라는 말에는 종교적 의미가 가미되어 복잡하지만, 미신적 행동이 형성되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이 없어 면도하지 못하고 시험을 봤는데 결과가 좋았다면 아마도 다음 시험에는 의도적으로 면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면도하지 않았다는 우연적 행동과 시험결과를 연결지으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는 면도하지 않는 행동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것이데 이러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미신적인’ 행동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미신적 행동 역시 몇 차례 기대했던 효과를 안겨주지 않으면 사라질 것입니다.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미신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았거나 과학적인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은 과학적인 틀 내에서 검증할만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현대적 학문에서는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은 학문적 주제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라는 말로 과학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언급한 연구가 과학적이라고 할 만큼 적절히 진행되었는지 일반인들이 판단하기는 어렵고 한두 번의 연구결과로 검증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지나칩니다. 칼 포퍼는 '연구의 논리'에서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하고자 하는 주장에 반대되는 반증 자료가 관찰되지 않으면 ‘일단’ 수용하는 ‘반증주의’를 과학적 연구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토마스 쿤 역시 과학혁명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에 수용되지 않는 결과가 누적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어야 비로소 수용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과학적이라는 말보다는 근거 기반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근거 기반이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 외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유사한 이론이 여럿 있을 때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인지 경제성 혹은 실효성 등을 비교하여 판단하는 의미로 과학적이라는 말보다 더 큰 개념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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