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해야 할 때 망설이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성과 감성의 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하고 싶다면 이성은 반대하고 감성이 찬성하는 경우입니다. 당사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주변에서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해"라고 말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원론적인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해보지 못했던 결정을 해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부모라면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라는 말은 감성의 소리를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이성의 소리는 남들에게서 받은 교육과 경험의 결과에 해당하고 감성의 소리는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내 본연의 순수한 감정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도 본연의 것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이 개입된 결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성적 판단의 개입 시점입니다. 이성적 판단이 먼저 개입된 후에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감정을 거의 반사적으로 느끼고 난 후에 이성적 판단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감정 반응은 예를 들어 길을 가는데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타나 부딪힐 뻔한 상황에서 뭔가 앞에서 '휙' 지나가는 것을 감지하고 놀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일단 심장이 '쿵쾅쿵쾅' 놀란 다음에 오토바이 폭주라는 것을 인식하고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결과입니다. 생명에 위협을 급작스럽게 느낄 때의 놀람을 감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이성적인 판단을 거쳐서 일어나는 정서반응으로 특정 상황에 대한 의미와 가치, 선택지의 장·단점 등을 감안하여 느끼는 것입니다. 이해관계를 따지면 복잡하고 잘 따져본다 해도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마음이 가는 대로'라는 말은 너무 따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결정이라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혼과 같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인생의 중대한 결정이라면 '마음이 가는 대로'가 과연 적절한 권유인지 의심됩니다. '마음 가는 대로' 결정했다 해도 사실상 이성과 감성의 소리를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일 수밖에 없으므로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라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런 말을 자주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당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인 양 생각하게 될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라는 말이 마치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해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려 거북할 때가 있습니다.
'심리 관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연상과 투사적 심리검사 (1) | 2021.11.26 |
---|---|
트라우마의 본질: 일주일의 시작은 월요일 아닌가요? (0) | 2021.11.25 |
선택권이 없었다는 자기 변명 (0) | 2021.11.04 |
죄책감, 무력감, 슬픔 (1) | 2021.10.28 |
과학적이라는 그 무거움 (0) | 2021.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