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과는 다른 관점의 얘기를 하면서 인용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말 그대로 생각한다면 고래까지도 춤을 추게 할 정도로 칭찬이 영장류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우리의 행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든지 조종받고 통제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관중들 앞에서 춤을 추고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고래가 원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고래는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게 되었을까요?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만들려면 우선 칭찬이 고래에게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고래는 인간과 교감을 잘하고 영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인간의 칭찬 제스처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아마도 고래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먹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기대하는 동작을 고래가 보일 때마다 먹이를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든가 혹은 두드려주든가 하는 등의 칭찬과 연관된 동작을 함께 제공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칭찬이 먹이와 연결되는 조건화가 일어나고 조건화로 인하여 칭찬이 먹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사람은 지적 능력이 우수하여 이런 학습 과정이 단축될 수 있고 사고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먹이와 머리 쓰다듬기의 연결을 더 쉽게 배울 것입니다. 또한,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사회에서 먹고 싶은 것이나 물질적인 것은 돈이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지만,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은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칭찬은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칭찬이 무슨 일에나 주어진다면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것이고 가치가 적은 것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특정 행동을 학습하기 원한다면 정확히 그 행동에 대해서만 칭찬이 주어져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칭찬받을 수 있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구분되어야 특정 행동 혹은 행동 패턴을 학습할 수 있는 것인데, 모든 것에 칭찬이 주어진다면 모든 행동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자녀의 기를 살려주려는 의도에서 자녀의 이 행동 저 행동 모두 칭찬한다면 아이가 학습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행동은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는 ‘제왕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든 상관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배울 위험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든 ‘오냐 오냐’하는 것, 즉 지나친 수용은 아이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조건 없는 지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주장 및 연구결과들이 보고되는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히 성장한 사람들을 보아도 주변에 믿고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항상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기의 행동과 노력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자기 행동의 주요 지침으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칭찬과 인정을 과도하게 받아온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가 행동의 주요 지침이 되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인정받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줄곧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아이는 예쁘다는 소리를 지속해서 듣지 못하면 기가 죽고 의기소침해지며, 의욕이 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 즉 칭찬해 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죠.
긍정적인 것도 지나치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칭찬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타인의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은 부모와 사회의 역할입니다. 칭찬으로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들 수 있지만, 고래가 춤을 추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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