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것인가 ...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요? 앞만보고 내달리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길을 찾는 당신에게 ...

심리 관련 이야기

"그 다음이 문제야"

justhong 2021. 12. 14. 17:52

잘못이나 후회할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리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흑역사가 있다. 얼굴 한 번 붉히고 웃어 넘길 수 있는 흑역사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인 것도 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 스스로 어처구니없어 할 때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슬며시 기억에서 밀어낸 흑역사도 있다.

 

흑역사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해서 흑역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흑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세월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악을 행하기도 하고 쉬운 길을 택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기도 한다. 흑역사를 피하지 못했다면 흑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해주는 대표적 드라마는 역시 '모래시계'다.

 

우석과 태수는 고등학교에서 만난다. 우석은 자기 나름의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전교에서 1등 하는 수재다. 태수는 주먹을 좀 쓸줄 아는 전학생으로 엄마를 보면서 정신 차리고 공부하고자 우석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우석은 공부와 싸움 둘 다 할 수는 없으니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태수가 약속을 지키면서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태수는 우석과 함께 공부를 하고 육사에 진학하려 했으나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이유로 진학에 실패한다. 급기야 엄마가 사고로 사망하고 태수는 주먹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우석은 법대에 입학하고 입대한다.

1980년 5월 광주! 우석은 계엄군으로, 태수는 시민군으로 광주에 있었다.

우석은 광주에서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믿어 온 것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태수는 해오던 대로 살아간다. 우석은 검사가 되고 태수는 조직폭력배가 되고 둘은 결국 구치소에서 다시 만나는데 우석은 태수에게 담당 검사가 바뀔 것 같다고 알려준다.   

 

"검사가 바뀔 거 같다. 재판 도중에 이런 일 별로 없지만, 그렇게 될 거야. 어쩌면 너 조사 다시 받아야 할지 몰라.  성가시더라도 협조해 줘."

 

"우석아. 니가 해줘."

 

"싫어!"

 

"너 힘든 거 알아. 아는데 니가 해. 나 너 알아. 너 같은 놈이  구형을 주면  나 납득할 수 있어. 너 말고 다른 놈은 못 믿어. 너 말고 다른 놈이 나서서 내 죄가 어쩌고 그래 봐. 나 속으로 그럴 거야. 웃기지 말고 너나 잘해라."

 

"나 광주에서 너 봤어 그때 나 계엄군이었다. 몸둥이로 사람들 패고 총 들고 쏴댔어. 그때 넌 시민군이었고. 광주에서 죽었다는 니 후배 우리가 쏜 총에 맞았어. 나한테 속아 왔어."

 

"그 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하나는 너처럼 살고 또 하나는 나처럼 산 거야. 어이, 너 대단해. 진심이야. 우석아 니가 해줘. 다른 놈은 싫다. 미안해."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적도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도 겪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경험도 있다. 이런 사건들을 경험하고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다.

우리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살 수도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살아갈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행위를 업적으로 생각하면서 살 수도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