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하는 판사를 만나게 된다. 글쎄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서인지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말이 어딘가 거슬리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거슬림을 뛰어넘을 정도로 '갱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소년범들의 행태가 묘사되어 분노뿐만 아니라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죄는 행위고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므로 행위의 결과에 대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법원에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소년심판'에서 필자가 받은 메시지다. 어쩌면 필자의 생각이 본래 그러하여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겠지만, 그 사연이 개인의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유와 상관없이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임을 묻기보다 교화의 측면에서 법을 적용한다면 불우한 가정환경, 심신미약, 초범, 반성과 같은 것들이 면책의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가해자만 생각하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배제된 것이므로 공정한 법 집행이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진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사람은 면책보다는 오히려 처벌을 원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 버렸다. 법에 대해 문외한이므로 법에 관해서가 아니라 '소년심판' 마지막 회에서 묘사된 극 중 인물 '심은석'의 애도 과정에 대해 말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애도 과정은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수 있으므로 심리치료 과정에서 진행되기도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극 중에서도 애도 과정을 마무리하는 데 사실 5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됐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특히 그 이별이 급작스러운 것이라면 슬픔보다는 충격이 먼저일 것이다. 심은석은 5년 동안 이런 충격과 슬픔을 느끼지 않고자 모든 감성을 닫아 버렸다. 우리는 이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정리가 되어야 적절히 슬퍼할 수 있고 슬퍼하는 애도 과정을 거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것이 사라지고 남은 빈자리에 가득한 슬픔과 분노, 두려움을 다 들어내고 나면 원래의 빈자리가 나타난다. 이 빈자리가 다른 중요한 것으로 채워지기 전까지는 애도 과정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심은석의 경우는 '소년범죄'에 대한 견해가 다듬어지고 정립된 목표로 채워진 것 같다.
애도 과정의 마지막은 유품을 태우는 것과 같이 이별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러한 의식을 통해 헤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속에 담아내는, 그래서 더는 상실이나 이별이 일어날 수 없는 상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충격적 사건이 불행한 사건으로, 아픔이 잔잔한 슬픔으로, 그리움이 애틋한 미소로 전환되어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어 가는 과정이 애도의 의미일 것이다.
감성을 차단하고 이성으로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심은석을 보면 AI 로봇이 연상되지만, 사회정의 구현의 차원에서 피해자에게 공감적인 심은석을 보면서 감정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불가능하리란 생각이다. 심은 석의 경우 애도과정의 첫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므로 이제는 가해자에 대한 공감의 폭을 점차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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