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은 1849년 골드러시 대열에 합류하여 서부로 간 채굴자의 애환을 달래주던 미국의 민요라고 한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사금이 발견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동부인이 서부의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는데 1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49er(포티나이너)라 부른다고도 한다. 클레멘타인 가사의 일부를 옮기면 대략 다음과 같다.
동굴과 협곡에서 금맥을 찾아다니던 한 채굴자가 클레멘타인이라는 딸과 살고 있었다네. 클레멘타인은 매일 아침 정각 아홉시에 새끼오리들을 물가로 데려가곤 했는데 어느 날 돌부리에 발이 걸려 물에 빠졌다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 그렇게 클레멘타인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네.
일시적으로 기분이 저하될 때는 경쾌하고 즐거운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기분전환이 될 수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슬픔이 밀려올 때는 슬픈 감정과 파장이 맞는 음악에서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슬픔에 반대되는 즐거운 노래를 부른다고 기분전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포티나이너들은 고독감과 무력감이 어우러진 애환을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에 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기분전환을 하려면 기분의 정도에 상응하는 음악을 접해야 도움이 된다.
클레멘타인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채'로 시작하는 것으로 학교에서 배웠다. 가사를 달리해 부른 것 중에서 '엄마엄마 나 죽으면...'으로 시작하는 버전도 있다. 이 버전은 엄마가 미울 때, 뭔가 서러워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부르면 기분이 나아졌었다. 엄마한테 화가 났을 때 내가 물에 빠져 죽으면 엄마가 슬퍼하겠지... 어떻게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을 때 내가 죽으면 엄마가 잘못을 뉘우치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상이 되고 마음이 달래졌었다.
이 노래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이다. 하나는 거부할 수 없는 요구를 엄마에게 하는 것이다. 망자의 부탁은 '명령'에 해당하므로 상상에서만이라도 엄마에 대한 통제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무력감에 대응하는 통제감을 느낄 수 있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둘째는 엄마가 슬퍼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찾아와도 엄마엄마 울지 마'라는 마지막 대목에서 내가 없어서 엄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동시에 엄마가 나한테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고 엄마 자신을 탓하라는 의미이니 엄마를 나무랄 수도 있다. 엄마의 잘못을 나무랄 수 있으니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섬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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