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것인가 ...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요? 앞만보고 내달리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길을 찾는 당신에게 ...

심리 관련 이야기

과학적 실재론

justhong 2024. 1. 24. 15:45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내용은 실재하는 사실인가 아니면 관념인가? 
내담자가 진술하는 내용은 실제 일어난 사실일까? 아니면 내담자의 생각일까?

내담자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달라질 것이 없는데 상담과정에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이런 의문은 '인식론'의 다음 두 가지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1)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식의 본질)

   2)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인식의 출처)?

철학은 어려운 영역이라 필자가 제대로 알고 얘기하는 것이라 장담할 수 없지만, 이해한 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담과정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빨리 알고 싶은 분들은 '구성주의' 부분으로 넘어가시면 될 것입니다.)

인식의 본질 즉,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관점에는 관념론 vs. 실재론이 존재합니다. 실재론은 인식의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 상관없이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재론에 근거한다면 학문의 목표는 당연히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를 밝히는 ‘진리탐구’가 될 것입니다.

이에 비해 관념론은 물질적 대상이나 외부의 물체들도 우리의 인식이나 의식을 떠나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주장입니다. 극단적 관념론에서는 인식되어야 비로소 존재가 확인되므로 인식된 대상들의 독립된 실재성을 부정하지만, 일반 관념론에서는 대상의 실재성까지 부정하지는 않고 우리가 지각하는 것과 똑같은 대상이 외부에 실재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식의 출처 즉,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느 관점에는 합리론과 경험론이 존재합니다. 인식의 출처에 대한 논쟁은 관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머릿속의 표상에 해당하는 ‘관념’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구분됩니다. 

​합리론은 확실한 지식은 이성과 사유로부터 얻어진다고 주장하며 감각기관으로부터 얻은 감각 경험 자체가 지식이 아니라 이러한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이성이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 봅니다. 이에 비해 경험론에서는 우리의 의식이란 원래 백지상태(tabula rasa)며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 관념이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학문이론

인식의 본질과 인식의 출처로 철학적 관점을 구분한다면 다음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논리적 실증주의에서는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 즉, ‘진리’를 입증해 나가고자 하며 입증의 방법으로 귀납 추론의 과정을 강조하므로 검증(입증)이 가능한 진술만이 학문적으로 유효하다고 봅니다. 측정할 수 없는 대상, 검증할 수 없는 대상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고 한가지 측정(방법)으로 확인한 경험이 확실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여러 측정(방법)을 통한 ‘간주관성’에서 확실성을 보장받으려 합니다.

​논리적 실증주의에서 주장하는 바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비판적 합리주의에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관찰할 수 없으므로 주장의 ‘진실성’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주장하는 진술에 ‘반하는 경우'를 제시하는 반증에 실패하면 일단 그 진술은 진실로 수용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주장하고자 하는 연구가설에 대립하는 귀무가설을 검증하는 통계 방법의 논리적 기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념적) 구성주의

구성주의는 우리가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혹은 대상,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름 ‘발명’ 혹은 ‘구성’ 한다고 주장합니다. 관찰은 감각을 통해 일어나지만, 외부 세계 혹은 대상에 대해서 하는 우리의 진술은 우리가 지각한 것에 대한 구성이므로 외부의 세계와 지각된 세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언제든 부정될 수 있고 새로운 구성으로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심리상담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면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는 여러 생각들, 관련 구성개념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상담과정에서 내담자가 구성한 것과 상담자가 구성한 것이 서로 교류하면서 좀 더 원숙한 형태로 재구성되면, 트라우마가 더는 상처가 아니라 하나의 아픈 기억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므로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상담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과학적 실재론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는 ‘과학적 실재론’에 근거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도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학적 실재론에서 본다면 객관적인 진리가 외부에 존재한다고 보고 우리가 인식한 것이 외부에 존재하는 ‘진리’에 상응하는 가를 판단하는 검증 기준으로 '입증'보다는 '반증'을 택하고 반증에 실패할 때 잠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주의할 점은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에 더 가까우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절대 진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실재론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외부에 객관적인 실체가 존재하고 우리는 감각 경험을 통해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들었다면 내가 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발명된 것이고 재발명 혹은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상담과 심리치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