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우울합니다. 의욕도 없고요 ”
“언제부터 그러신가요?”
“1년 정도 됐어요”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일상에 변화를 줄 정도의 일이요”
“그때 실직했죠. 회사가 어려워서 퇴사했는데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막막합니다.”
아마도 다음 질문은 상담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울 증상과 우울 증상 외에 다른 증상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일 겝니다.
“잠은 잘 주무십니까?”
“식사는 잘 하세요? 그동안 체중 변화가 있으신가요?”
“요즘은 하루 동안 무얼 하면서 지내시나요?”
우울과 연관된 증상들이 확인되면 “실직에 의한 우울장애”로 판단하여 우울장애 진단을 내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것이 보통의 경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진단이기 때문인 것이죠. 실직에 의한 우울장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실직에 의한 스트레스에 의한 우울장애'가 될 것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치료의 대상이 될 것이고 심리학적으로는 스트레스의 내용이 치료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실직을 ‘치료’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정책수립자거나 사회복지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취업이나 구직, 취업으로 인한 금전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엄밀히 말한다면 정책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심리학적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스트레스란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이 모호함을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직에 대해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의 예에서 ‘막막함’을 느낀다고 얘기했으니 이 막막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피는 것이 인지 치료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심리치료에 인지 치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 치료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사건 -> 생각 -> 감정 ->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실직은 사건이고 막막함은 감정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막막함을 일으키는 생각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그러한 생각이 타당한 것인지 살피면 막막한 감정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인지 치료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행동적 차원까지 진행하면 행동치료로 이어져 인지행동치료가 되는 것이죠.
내담자에게 인지치료적 관점에서 설명을 하면 내담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합니다. 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이어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 느끼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전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무의식이니 대상 관계가 어떻고 방어기제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해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자주 듣지 않아 생소하거나 낯설어 새로워보이는 개념들에 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가장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전문적인 것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전문적이라는 것은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고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검증을 통해 가능한데 일정 수준의 검증을 통과한 것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 즉, 전문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상담에서 해결책은 이미 내담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알고 있어도 스스로 잘 하지 않게 된다는 데 있는 것이죠. 이럴 때는 잠시 동반해줄 상담자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 소화불량에도 찾아갈 수 있는 동네의 주치의 제도가 유용하듯이 동네의 ‘정건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건사는 심리적 영역에 관하여 수월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동네의 ‘정신건강임상심리사’를 줄인 말입니다. 언젠가는 정건사 제도가 정착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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