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라서 산만한 것이 아니라 산만해서 ADHD라고 하며 강박장애가 있어서 강박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강박 증상을 보이므로 강박장애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통용되는 증상학적 진단의 원리입니다. 진단명은 자주 함께 나타나는 증상들 즉, 증후군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죠. 그러므로 "제가 왜 이렇게 산만한 거죠?"라는 질문에 "ADHD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배가 왜 이렇게 아픈거죠?"라고 묻는 이에게 "복통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리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특정 증상이 단일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ADHD의 진단 기준에도 산만함의 원인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산만한 행동의 원인도 매우 다양하므로 진단을 통해 원인이 규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ADHD의 원인으로 '뇌의 미세한 손상'을 생각한다면 ADHD의 진단 기준에는 예를 들어 "MRI 상 뇌의 특정 부위에 1mm 이상의 균열이 있어야 한다."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이 균열이 왜 생겼는지가 궁극적인 원인에 해당할 것이지만, 그래도 뇌의 균열로 인해 산만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고 균열을 치료해서 산만한 증상이 사라진다면 진단이 정확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진단은 원인에 따른 진단 즉, 병인론적 진단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정신의학분야에서는 현재 증상학적 진단이 사용됩니다.
병인론적 진단은 신체 의학분야에서 활용되는 진단법입니다. 병인론적 진단은 증상과 징후를 보고 원인을 추정하여 진단을 내리는 것이죠. 진단했다는 것은 원인을 파악했다는 것이므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처방을 통해 증상이 사라지면 성공적으로 치료된 것이며 정확히 진단을 내린 사람은 명의가 되는 것입니다. 원인에 해당되는 것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현대에는 다양한 검사를 활용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의학은 괄목할 발전을 이루어왔고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에 차이가 있듯이 정신의학 분야는 신체 의학 분야와 다르지만, 의학과 동일시하여 기계론적인 사고를 그대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체 의학적인 원인에 의해서도 정신장애 증상이 나타나지만, 정신장애를 얘기할 때는 보통 의학적 원인에 의한 증상을 제외하므로 정신장애 증상의 대부분은 기능적인 장애에 해당합니다. 신체적인 고장 (defect)을 전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사진을 찍어도 이상한 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능적인 증상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전문가라면 어느 누구도 단일 원인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일 원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아마도 점쟁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양한 원인 중에서 가능성이 큰 원인이나 처음에 치료효과를 나타내서 변화 동기를 강화할 수 있는 원인, 시급히 해소되어야 할 원인 등을 고려하여 치료 방향을 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다양한 원인들이라 하여도 서로 얽혀있으므로 하나의 원인적 요소가 해결되면 연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면서 치료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종의 순환논리에 말려들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살펴야 적절한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유가 아닌 것을 이유로 받아들이고 단순히 이유를 알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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